인공지능(AI)의 발전은 과학과 기술의 진보만이 아닌, 인간의 존재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합니다. 우리는 점점 더 많은 판단과 결정을 기계에 위임하고 있지만, 이 변화 속에서 인간만의 가치는 어떻게 지켜지고 있을까요? 인문학은 기술 중심 사회에서 인간다움을 유지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반입니다. 이 글에서는 인문학의 관점에서 AI사회를 분석하며, 인간성의 본질과 그것을 지키기 위한 사유의 중요성을 다룹니다.
인문학, 기술을 바라보다
현대사회는 ‘기술로부터 자유로운 인간’을 이야기하기 힘든 시점에 도달했습니다. 인터넷은 물론이고, 인공지능이 내장된 알고리즘이 우리의 검색 결과를 조정하고, 쇼핑 목록을 제안하며, 심지어 연애 상대를 추천합니다. 이러한 흐름은 명백히 우리 삶을 편리하게 만들고 있지만, 동시에 우리는 중요한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이 기술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우리는 기술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이러한 질문은 단지 기술자의 영역이 아니라 철학자, 문학자, 역사학자의 영역이기도 합니다. 인문학은 기술을 단순한 ‘도구’로 보지 않습니다. 그것이 인간의 삶에 미치는 영향, 사회 구조의 변화, 인간관계의 재구성 등을 다각도로 해석하고 사유합니다. 예를 들어, 마르틴 하이데거는 기술을 ‘세계-파악 방식’이라고 보았습니다. 즉, 인간이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 자체를 기술이 규정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AI의 판단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의 판단 능력과 독립성은 점차 약화될 수 있습니다. 또한, 문학은 기술의 그림자에 대해 오래전부터 경고해 왔습니다. 조지 오웰의 『1984』,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는 기술이 인간의 자유와 정체성을 어떻게 위협할 수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인문학은 과거의 경험을 통해 현재를 비추며, 기술의 혜택과 부작용을 균형 있게 성찰하도록 돕습니다.
인공지능 시대의 윤리와 철학
AI는 인간의 신체적 노동을 넘어, 정신적 노동까지 점점 대체하고 있습니다. 챗GPT와 같은 생성형 AI는 글쓰기, 상담, 번역, 코딩 등 고차원적인 인지 활동을 수행할 수 있으며, 그 결과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의 범위가 축소되고 있습니다. 특히 의료, 금융, 법률과 같은 생명·사회의 핵심 영역에서 AI가 의사결정에 개입하면서 윤리적 논의는 더욱 심화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의료 AI가 환자의 생사를 결정하는 중대한 판단을 내릴 때,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또 AI가 가진 편향적 학습 자료로 인해 차별적인 판단을 내릴 경우, 이는 기술의 오류일까, 인간의 무지일까? 이러한 문제는 기술 자체보다도 인간의 철학적 성찰과 윤리의식 부족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칸트는 “인간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AI가 모든 결정을 대행하는 사회에서는 인간이 점차 객체화되고, 효율성과 생산성 중심으로만 평가되는 경향이 강해집니다. 이는 결국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윤리는 단순히 ‘선과 악’을 가르는 기준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태도입니다. AI가 발전할수록 우리 사회는 더욱 복잡하고 다층적인 윤리 문제에 직면하게 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술적인 해결책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인문학은 인간 중심적 시각에서 문제를 재정의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유일한 학문 분야 중 하나입니다.
인간성, 기술과 어떻게 공존할까
AI의 발전이 가속화되면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점점 더 절실해지고 있습니다. 인간은 감정, 공감, 직관, 예술적 창의성, 도덕성 등 기계가 흉내낼 수는 있어도 본질적으로 동일하게 구현할 수 없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기술이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고 있다는 인식 속에서 스스로를 축소하거나, 자신의 정체성을 기계에 의존하게 되는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기술은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하고 강화해야 하는 존재입니다. 인간 고유의 가치가 퇴색되는 상황을 막기 위해서는 인문학적 교육과 사고가 필수적입니다. 교육 현장에서는 코딩, 빅데이터와 같은 기술 교육만이 아니라, 철학적 사유, 윤리적 판단, 문학적 감수성을 함께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야 기술을 올바르게 해석하고, 인간 중심으로 재구성할 수 있습니다. 또한, 사회는 인간성 회복을 위한 구조적 변화도 함께 추구해야 합니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문화예술 치유 프로그램, 철학 강연과 토론문화 활성화, 인문학적 글쓰기 교육 등은 인간 내면을 돌아보는 계기가 됩니다. 우리는 빠른 기술 발전 속에서도 잠시 멈추어, ‘나’와 ‘우리’의 삶을 성찰하고 공동체적 의미를 회복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결국 기술과 인간성의 조화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입니다. 인문학은 이 중요한 균형점을 유지할 수 있도록 우리를 안내합니다. 인간이 중심에 서 있는 기술 사회는 가능하며, 이를 위해 인문학은 끊임없이 질문하고, 의심하고, 성찰해야 합니다.
AI 사회는 기술의 진보만으로는 유지될 수 없습니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한 철학, 윤리, 역사, 문학적 시각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합니다. 인문학은 우리가 기술에 휘둘리지 않고, 기술을 인간을 위한 도구로서 활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지적 기반입니다. 미래는 기술이 주도하는 사회가 아니라, 인간의 성찰이 중심이 되는 사회이어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는 기술보다 앞서 ‘나 자신’을 돌아보아야 할 때입니다.